특히 선조는 왜검술에 대항하기 위해 창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살수의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는 당시 조선의 장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조총이 아니라 일본의 왜검이었기 때문이다.
『왜적과 대적해서 왜병이 오로지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해 오면 우리 군사들은 검은 칼집에서 뽑을 겨를이 없고
창은 교전 한번 못 해보고 속수무책으로 적의 칼날에 당하고야 말았다.』 -무예도보통지 기예질의 中
이에 훈국랑(訓局郞=훈련도감의 낭관) 한교가 6기(六技)를 정리하여 『무예제보(武藝諸譜)』를 간행하고는 장졸들로 하여금 단병무예를 익히도록 하였다.
이들 무예는 12명이 하나의 대형을 이루어 싸우는 원앙진을 구성하는 기예가 주를 이룬다.
원앙진은 단병접전에서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한 일본의 왜검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왜적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한교는 세조 때의 공신인 한명회의 5세손으로 일찍부터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에게서 학문을 배워 경학(經學)과 병략(兵略)에 조예가 깊었다.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